스퀘어 에닉스와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공동으로 손을 댄 액션 RPG 시리즈 킹덤하츠의 최신작 '킹덤하츠3'가 시리즈 최초로 정식 한국어판으로 발매됐다. 최초의 한국어화 출시와 친숙한 디즈니 캐릭터 및 월드 다수 등장이라는 요소로 그간 킹덤하츠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람도 관심을 가질만한 신작이다. 시리즈물의 특성상 그간 출시된 전작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최소한 전작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시작한다면 다소 난해함을 느낄 수도 있다.
킹덤하츠3는 본편을 비롯해 무수한 외전, 리메이크, 리마스터, 파이널 믹스 등 다양한 타이틀을 출시한 시리즈 중에서도 2편의 파이널 믹스를 기준으로 거의 13년 만에 출시되는 정식 넘버링 작품이다. 물론 굳이 정식 넘버링으로 따지지 않고 출시순으로 따져도 전작의 출시로부터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출시된 신작이라 팬들의 많은 성원과 기대를 받은 바 있다.
킹덤하츠는 주역 오리지널 캐릭터 소라를 비롯한 킹덤하츠 측 캐릭터와 도날드덕, 구피, 미키마우스 등의 인지도 높은 디즈니 작품 속 캐릭터들이 힘을 합쳐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 출시는 아시아 출시와 동일하게 5월에 진행됐지만 일본판과 글로벌판은 이미 1월 말에 앞서 출시돼 기존 팬들은 이미 한국어판 출시에 앞서 클리어한 경우도 많을 것.
■ 킹덤하츠
마블이 어벤져스를, DC가 저스티스 리그를 결성한 것처럼 인기 있는 IP들이 하나로 뭉쳐 독립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플롯은 팬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런 시도가 일본의 게임 업계에서도 있었다. 스퀘어 에닉스가 아직 스퀘어 사였던 시절, 파이널 판타지와 별개로 3D 그래픽의 신작 액션 게임을 원하던 메인 디렉터 노무라 테츠야와 그 아이디어가 진행되면서 월트 디즈니 컴퍼니 일본 지부가 더해지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오리지널 주인공과 인기 디즈니 IP 캐릭터가 합쳐진 대망의 신 시리즈 '킹덤하츠'가 탄생했다.
킹덤하츠 시리즈는 국내에서는 그렇게까지 많이 알려진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팬들에 의해 게임보이 어드밴스판 킹덤하츠 체인 오브 메모리즈 같은 작품처럼 비공식 한글화가 진행된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 출시된 8년만의 최신작인 킹덤하츠3 이전에는 정식 한국어화가 전혀 진행되지 않아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같은 느낌의 시리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가 처음으로 킹덤하츠 시리즈를 손에 잡은 것도 체인 오브 메모리즈에서부터였다.
디즈니나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들이 들어왔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킹덤하츠가 자체적으로 다루는 오리지널 요소들도 좋았다. 대표적으로 킹덤하츠를 어렴풋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만한, 사용자의 마음과 연관이 있는 열쇠 모양의 독특한 무기 '키 블레이드'가 그렇다. 킹덤하츠만의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기존의 디즈니 캐릭터들이나 파이널 판타지 캐릭터들과 얽히면서 점차 중심이 되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물론 처음 킹덤하츠를 접했을 당시엔 모 몬스터볼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하던 때였지만 파이널 판타지와 디즈니, 이들 역시 기대감을 자극하는 두근거리는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리즈는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며 비록 종장 역할의 3편 하나뿐이지만 마침내 국내에 정식 한국어판으로 출시되기에 이른 것이다.
■ 구현도 높은 디즈니 월드
게임을 처음 시작하고 주인공 소라의 능력에 대한 선택지를 고른 뒤 튜토리얼 전투를 넘어가면 파트너인 도날드덕과 구피와 함께 처음으로 진행하게 되는 월드가 디즈니의 '헤라클레스' 속 올림푸스 월드다. 3D로 구현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 속 테베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 전개에 따라 하데스나 헤라클레스, 메가라, 제우스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후로도 종종 주인공이 전환되면서 오리지널 월드와 디즈니 월드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식이다. 스토리 진행은 플레이어가 순서를 정할 수도 있지만 월드의 레벨이 설정된 상태라 사실상 월드 순서 선택지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선형적 진행에 가깝다.
킹덤하츠3을 플레이하기 시작하고 가장 처음 감탄한 것이 영상을 찢고 3D 세계로 튀어나온 것 같은 디즈니 캐릭터들의 비주얼이다. 어릴적 TV를 통해 시청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그대로 게임 속에서 활동하고, 일부는 동료로 함께 싸우기까지 한다. 각 작품의 월드 디자인도 훌륭하다.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여겨졌던 겨울왕국의 아렌델도 들어가있으며 익히 알려진 것처럼 영화 속 Let it go를 재구현하면서 원본 영화에서 옥의 티로 유명했던 장면에 대한 수정도 들어갔다.
디즈니 IP를 좋아한다면 킹덤하츠3 속 디즈니 월드와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도, 원작을 재현하는 의미로도 충분히 반갑고 즐거운 장면들을 연출해 줄 것이다.
■ 화려한 어트랙션 플로우, 무난한 난이도
킹덤하츠3의 국내판은 해외판이 초기 출시단계에서 크리티컬 모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처음부터 최고 난이도인 크리티컬 모드가 추가된 상태로 제공됐다. 난이도는 신규 플레이어도 적응만 하면 금방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정도는 되며 보통 난이도도 마냥 쉽게 만들기보단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간혹 강력한 일격을 받는 일도 있는 수준으로, 상위 난이도로 갈수록 점점 손을 타게 난이도를 조절했다.
기본적인 전투 진행 방식은 흔히 볼 수 있는 액션 RPG들처럼 공격과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인데, 전투가 진행되는 도중 커맨드를 움직여 마법이나 아이템 등을 사용하는 방식이 기본이지만 실제로 사용하기 편하게 하려면 단축 버튼에 등록해 바로바로 사용해주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특이한 점은 이동 중 전투에 돌입하면 메뉴에 진입할 수 없어 모 수렵 액션 게임처럼 전투 전에 등록해둔 아이템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겹치기도 되지 않아서 소지한 회복 아이템이 6개라고 쳐도 슬롯에는 각각 한 개씩 따로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템 사용 타이밍은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상황에 따라 현재 함께하고 있는 동료와 협력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올림푸스에서 불타는 길을 지나가기 위해 구피의 방패를 타고 이동하는 트리니티 실드를 발동하거나, 전투 도중 주변에 폭죽을 쏟아내는 도날드덕의 협력기가 그 예다. 이런 협력기를 활용해 보다 화려하고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면서 전투를 즐길 수 있다. 이런 스킬들 외에도 모든 캐릭터는 액션과 무브 어빌리티가 있어 총 어빌리티 포인트의 제한까지 어빌리티를 장착시켜 캐릭터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개중에는 초반부에는 도저히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은 고 포인트의 어빌리티도 존재한다.
어트랙션 플로우는 보다 강한 일격을 가할 수 있는 화려한 기술이다. 좌측 하단의 UI에서 어트랙션 플로우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표시해주며 그 이름에 걸맞게 각종 놀이기구를 소환해 위력적인 공격을 퍼붓는 시스템이다. 스킬 발동과 피니시 단계로 나뉘는 어트랙션 플로우는 바이킹을 불러내 빙글빙글 돌며 타격 피해를 주다 주위에 파도를 밀어친다던가, 거대 암석 거인과 싸움을 벌일 때 공중을 달리는 기차를 불러내 거인을 향해 투사체를 발사하는 등 굉장히 화려한 모습을 연출한다.
■ 조금 힘 빠진 오리지널 스토리
한편 킹덤하츠3은 정식 넘버링 중 이번 3편까지를 '다크 시커 편'으로 분류하며 하나의 장을 마무리했다. 최초로 한국어판이 발매된 게임이 다크 시커 편의 마지막이 된지라 아무리 메인 화면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짧게 단축해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지원 기종도 다양하고 외국어로만 출시된 전작들을 직접 플레이 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시리즈물의 특징이 다 그렇지만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킹덤하츠 정식 넘버링 시리즈의 오리지널 스토리가 대단원을 맞이하는 단계라고 적었듯, 킹덤하츠 오리지널 스토리에 비중을 주는 편이 좋았을 것이나 뒤로 갈수록 후다닥 스토리를 마무리하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쉬운 전개를 보여줬다. 긴 이야기의 최종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정말 급하게 처리하는 느낌으로 연전과 컷신의 반복으로 매듭을 지어버렸다.
앞서 디즈니 월드의 구현도를 좋게 평가했지만 오리지널 스토리는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빠진다는 느낌을 준다. 흐지부지한 느낌이 드는 디즈니 월드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디즈니 월드의 구현도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아쉬움을 남기는 오리지널 스토리는 아무래도 팬들이 이 대단원의 끝에서 기대했던 바와는 다르지 않겠는가. 게다가 출발점이었던 파이널 판타지와 디즈니, 오리지널 킹덤하츠의 조합에서 파이널 판타지 쪽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사실상 모그리 외에는 파이널 판타지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아 이쪽도 아쉬움을 남긴다.
■ 디즈니'만' 기대한다면 좀
디즈니 캐릭터들이 마구 등장하는 시리즈이기는 하지만 온전히 디즈니만 기대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조금 기대에 어긋나는 감이 적잖게 있을 것이다. 물론 디즈니 팬에게도 즐길 수 있는 디즈니 월드나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자주 언급된 이번 타이틀의 겨울왕국 Let it go 씬 같은 것들이 있지만 킹덤하츠 오리지널 스토리와 디즈니 월드가 어디까지나 양립되는 시리즈고 주체가 되는 것은 킹덤하츠의 오리지널 스토리다. 또한 이번엔 파이널 판타지 쪽의 캐릭터 등장 비중 자체가 줄었다.
헌데 오히려 이번 작품에서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포함해 하나의 이야기로만 나눠서 보면 아쉬운 부분들도 다소 있었다. 후반부에 쌓였던 복선들을 와장창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면 기대해왔던 팬들에게는 조금 두루뭉술하고 급하게 처리한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특히 이 작품으로 길었던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 최초의 한국어화 타이틀이 그간 출시된 킹덤하츠 시리즈의 한 막을 내리는 타이밍이라 킹덤하츠3을 시작으로 시리즈를 접하는 사람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기 쉽다.
호불호와 익숙함의 문제이긴 하지만 한창 논쟁거리로 불거졌던 음성 문제도 있다. 킹덤하츠 세대는 킹덤하츠를 접하지는 않았더라도 디즈니 작품을 접한 사람은 많다. 당시 TV판을 방영하던 디즈니 만화들은 한국어 더빙이 되어있었고 주말 오전을 책임졌으며 최근의 디즈니 작품들은 영어 혹은 한국어 더빙으로 들어와 우리에게 '디즈니'가 주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영어 또는 한국어 쪽이 강한 편이다.
하지만 디즈니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하고 디즈니 월드들도 구현된 킹덤하츠에서는 기본적으로 북미판이 아니라면 일음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서 킹덤하츠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익숙한 디즈니 캐릭터들이 일본어로 말하는 장면을 보다보면 원래 익숙해졌던 이미지와의 갭이 생기는 것. 물론 처음에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음성 같은 경우는 개인 취향의 차이이므로 어느쪽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바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이번 작품으로 처음 들어온 신규 플레이어는 위화감을 느끼는 것이고, 기존 팬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않아 논쟁이 생기곤 한다. 그래도 이 음성 관련 문제는 향후 영문 음성 DLC를 통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만스러운 점을 줄줄이 이야기했지만 액션 RPG로서의 즐거움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디즈니의 비중이 오리지널 비중이나 파이널 판타지 비중을 아예 집어삼키려고 해서 그렇지 개별적인 완성도는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십 년 이상이 흘러 마침내 출시된 정식 넘버링 후속작인데다 정식 한국어판으로 처음 출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즐겁게 플레이를 즐길 수 있었다.
아쉬움을 많이 토로하기는 했지만 킹덤하츠3이 잘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나 출시된 후속작임에도 킹덤하츠라는 시리즈가 보여주던 매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구작을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완성도의 작품이다. 스토리 이해라는 측면에서 입문작으로 다소 난해하지만 공식 한글로 즐길 수 있는 타이틀은 이쪽 뿐이고 게임 자체의 재미는 좋은 편이니 킹덤하츠 시리즈에 관심이 생겼다면 집어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디즈니 IP를 좋아하는 사람도 단지 그것만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