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PS5, PS4, Xbox Series X/S, Xbox One, PC 스팀용 호러 인터랙티브 게임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더 데빌 인 미'의 한국어판을 지난 11월 18일 정식 발매했다.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는 독립적인 시네마틱 분기점들을 지닌 공포 게임 시리즈다. 새로운 공포 체험 제공을 위해 설계된 이 프랜차이즈는 매번 출시되는 게임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설정과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는 것을 기본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프랜차이즈 1부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더 데빌 인 미는 소규모의 다큐멘터리 촬영 회사인 로닛 엔터테인먼트TV 제작진이 연쇄살인마 H.H. 홈즈의 것을 본딴 살인의 성 호텔을 구축한 자산가 그랜섬 듀멧의 초청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플레이어는 미국 최초이자 최악의 연쇄살인범인 H.H. 홈즈의 아이디어를 계승한 이 컨셉 호텔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여러 선택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한편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와 같은 인터랙티브 무비 스타일의 게임들은 스토리 파트가 상당히 중요한 뼈대와 마찬가지이므로 리뷰 내용에서 도입부를 제외한 스토리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이전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큐레이터는 게임 진행 도중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를 지켜본다.
■ 기울어가는 다큐멘터리 제작사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더 데빌 인 미는 기존의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게임이 시작될 때 과거의 시점에서 사건을 다룬 뒤 본편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실제 사건들이나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은 들어보았을 미국 최초의 연쇄살인마 H.H. 홈즈의 실제 발언 중 the devil in me 부분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편의 주역은 전통을 따라 5인방이 등장한다. 이들은 기울어가는 다큐멘터리 제작사 로닛 엔터테인먼트TV 구성원들로 마침 H.H. 홈즈와 그의 살인 상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H.H. 홈즈에 심취한 의문의 자산가 그랜섬 듀멧에게 특별한 초대를 받게 되고, 로닛 엔터테인먼트TV의 사장 찰스 로닛은 다양한 조건들을 수락한 뒤 서둘러 멤버들을 데리고 만국 박람회 호텔의 세트가 있는 섬으로 향한다는 것이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더 데빌 인 미의 시작이다. 출시 전 프리뷰 빌드에서는 이 호텔에 도착한 시점부터 이야기를 보여줬지만 본편은 그보다 조금 이전의 모습으로 플레이어가 섬의 일부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프랜차이즈 내 기존작들도 게임 초반부는 이렇게 안전한 상황에서 현장을 둘러보거나 현장에 가기 전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이번 타이틀의 경우 그 분량이나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이게 오히려 빠르게 본편의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선 좋을지도 모른다.
한편 이번에도 돌려쓰는 모델이 꽤 등장한다.
그렇다고 본편의 가슴 떨리는 호러 이야기가 바로 들이닥치진 않는다. 사건의 현장에 도달하는 시간이 다소 빨라졌다고 느낄 정도지, 그랜섬 듀멧의 인도를 통해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는 또 각각의 캐릭터로 돌아가며 촬영을 준비한다는 호텔의 주변을 탐사하는 파트가 있다. 이 부분에서 기초적인 로닛 엔터테인먼트TV 구성원들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데,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의 묘미는 이런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이후 진행하면서 선택지로 좀 다르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디오 담당인 에린이 자신의 담배를 챙기지 않았다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찰스를 이후의 선택지들로 소규모 다큐멘터리 회사를 이끌어가며 팀원을 다독일 줄 아는 인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로닛 엔터테인먼트TV의 일원들은 누군가는 담배를 찾아 헤메고 누군가는 촬영할만한 장소를 찾는 등 저마다의 일을 하거나 관계를 쌓는 중 호텔 곳곳에서 미심쩍은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고 몇 가지 해프닝을 거쳐 자신들이 사건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이미 많은 것이 늦어버린 시점에 말이다.
■ 익숙한 맛과 새로운 맛
인터랙티브 무비의 특성을 가진 게임답게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는 맵을 걸어다니면서 증거물이나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 읽을 수 있고, 특정 시점이나 상황에 도달하면 영상이 재생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영상이 재생되거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시기에 플레이어가 순간적인 행동의 결정을 내려 그 결과가 유발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는 게임이다. 개발사 수퍼매시브 게임즈는 아주 예전부터 이런 방식의 게임들을 출시해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게임플레이 스타일이다.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더 데빌 인 미에서도 이런 익숙한 맛의 전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상황에 따라 다른 캐릭터 조작권이 주어지고 이들을 조작해 증거나 길을 찾다가 스토리가 진행되는 식이다.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결정적인 선택을 한다거나 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심장박동 타이밍을 맞추면서 위험을 회피하는 등 소소한 QTE들과 선택지가 주어져 이야기를 수놓는다. 혼자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플레이한다면 색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새로운 맛의 플레이스타일도 1부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이번 타이틀에서 제공됐다. 우선 각 캐릭터들이 네 칸의 인벤토리 슬롯을 갖게 됐다. 이들은 게임을 진행하며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활용해 막힌 길을 뚫을 때도 있고, 열쇠를 사용해 잠긴 문을 열거나 빛을 얻기 위해 라이터, 플래시라이트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QTE를 실패하면 결정적인 순간일 경우 죽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아이템만 잃고 살아남는 경우도 있는 등 게임 플레이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일부 캐릭터가 가진 아이템을 활용한 트로피(또는 도전과제)가 존재하기도.
또, 모든 캐릭터가 이제 탐색을 하면서 달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전까지 느리게 걸어다니기만 할 수 있어 다소 답답하다는 의견을 수용한 것인지, 조금 빠른 정도지만 달리기가 추가되어 좀 더 신속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외에도 추격자에게서 숨는다거나 각각의 캐릭터가 서로 다른 특별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 잠긴 장치를 따고 퓨즈 박스를 고치는 등 각 캐릭터를 살렸을 때 특정 작업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타이틀에서 가장 긴장되는 파트는 여기 아니었을까
■ 좋은 소재, 아쉬운 발전
H.H. 홈즈는 범죄 스릴러나 실제 사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꽤나 매력을 느낄만한 소재일 것이다. 혹은 이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서 기대감이 덜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호러 스릴러로 구현한다면 제법 재미있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공포의 세계로 끌어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플레이 초반에 살인 호텔에 초대됐을 때는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괜한 불안감을 느끼거나 가끔 들어간 점프 스케어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거기에 기분탓인지 호텔의 구조가 바뀌는 느낌이 들고, 음향 기술자 캐릭터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으러 돌아다니니 비명 소리나 기계 소리가 들려온다거나 갑자기 불이 꺼져 작은 불빛에 의지한 채로 복도를 헤메는데 분명 왔던 길이 달라져있는 등 살인 호텔의 기믹을 적극 활용해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게임의 이야기에 대한 흥미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살인 호텔의 홈즈 모방범은 계속해서 여유를 부리며 주역들을 농락하는데, 어두컴컴한 호텔 부지 곳곳의 환경이 주는 긴장감은 제법 좋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쏘우 시리즈나 B급 슬래셔물의 클리셰를 따라가기 시작하며 이번 타이틀에 걸었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범죄 스릴러 느낌을 살려 여기저기 살펴보면 알만한 것들이 배치되어 있다.
덧붙여 이 카테고리와 앞선 내용에서 각 캐릭터들이 다른 아이템과 해결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누군가가 죽거나 살아있을 수 있는 분기 이후의 시점에서야 그 캐릭터들이 있으면 유용했지만 막상 그들의 능력이나 아이템을 활용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 신 시스템의 구색 맞추기 느낌에 그쳐 아쉬웠다. 예를 들어 천식 환자인 에린의 호흡기는 횟수가 3번으로 정해져있다. 여기에 에린으로 플레이할 때 많은 돌발 상황이나 환경을 부여해 플레이어가 호흡기 사용 여부 판단을 내리게 하거나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자주 넣는 QTE같은 것을 통해 조심해서 플레이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게임을 진행하며 두 번만 사용하니 아쉬운 부분.
초자연적인 존재와 나름의 규명을 하려던 맨 오브 메단, 어떠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 마녀사냥의 마을 리틀 호프, 그리고 크리쳐물의 클리셰를 따라가지만 전원을 생존시키면 종막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하우스 오브 애쉬를 거쳐 이젠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악한 인간 살인마를 상대하면서 이야기의 플롯도 퀄리티가 다운된 느낌이다. 전작의 최종전을 생각하면 이번 타이틀의 최종전은 다소 심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악역의 급이 다르기야 하지만.
한편 게임의 그래픽이나 모션 면에서도 전작들에 비해 다소 어색함이 보였다. 표정이나 시선처리야 이전과 비슷한 느낌으로 괴리가 있지만 새롭게 추가된 가볍게 달리기 폼이 일부 캐릭터에겐 절망적인 모션을 선사했다. 늘 이야기가 나왔던 번역 부분에서도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초반부터 종종 나타나지만 존대 관련 번역이 특히 어색한 편이다. 예를 들어 프롤로그에서 과거 홈즈의 사건을 보여줄 때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호텔의 고객이기는 하지만 호텔 지배인으로 보이는 홈즈에게 바로 반말을 하는 식으로 번역되거나, 본편으로 넘어와 듀멧과 통화나 대화를 할 때도 갑자기 찰스가 반말로 응대하는 등 그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어색할만한 번역이라고 느껴졌다.
이런 부분들이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를 무난하게 즐기며 따라왔던 게이머라면 1부의 마지막 타이틀인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더 데빌 인 미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B급 슬래셔 무비를 즐겁게 시청한다면 이번 타이틀의 소재는 구미가 당기는 소재일지도 모른다. 캐릭터들의 데드신 외 다소 고어한 표현들도 게임 내에 포함되어 있으니 이런 부분에 취약하다면 주의. 여담으로, PS5 버전에서는 이렇다 할 버그가 없이 무난하게 끝까지 플레이할 수 있었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