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사상이 먼저인가? 가치가 먼저인가?

점점 늘어가는 관련 이슈
2023년 11월 27일 01시 16분 17초

사상검증. 최근 유독 국내 게임업계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특정 사상을 지지하는 창작자의 작업물이 공론화되고 이후 기업의 대처로 해당 인원과 결별하면 주로 쓰이고 있다. 2023 국감에서도 논의가 오갈 정도로 관심도가 늘었다.

 

이와 연관된 말로는 사이버 불링, 성별 갈등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앞선 두 가지 용어가 쓰이면 주로 성별 갈등 사상에서 촉발된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조금 먼 과거엔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가 이런 이슈로 화제가 되었고 가까이는 지난 25일 발생한 이슈와 그 대응을 보면 된다. 오늘은 이 25일의 이슈를 살피면서 게임이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게임은 '잘못 고르면 재미가 없을 순 있어도 기본적으로 하는 동안 즐거운 것'에서 일련의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점점 하기 전 내상에 대비해 미리 이것저것 문제점을 알아보고 들어가는 '조심스러운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과장이라고 생각하나? 여성혐오나 남성혐오를 막론하고 급진적인 사상과 관련된 이슈가 운영진이나 게임 내 컨텐츠​에서 발생하면 그 순간부터 리스크가 되어 서비스 종료 이후에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낙인이 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작년 국내 서비스 종료를 했던 모 서브컬처 리듬 게임도 오픈 직후 번역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빠르게 원본 표현을 따라가는 식으로 수정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도 서브컬처 게이머들에게 이 게임을 언급하면 항상 그 이슈부터 화두에 오르곤 한다.

 

 

 

급진적인 사상 관련 이슈의 문제는 첫째로 늘 뒤늦게 발견되고, 어떻게 찾았나 싶을 정도로 짧고 교묘하게 심어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 메이플스토리의 뮤직비디오에서 문제시되는 부분이 발견되고 이후 뒷통수를 맞았다고 느낀 이용자들이 제작사의 다른 작업물에서도 다양한 의심스러운 장면들을 발굴해냈으며, 해당 작업물을 사용한 게임사들은 서둘러 이에 대응해야만 했다.

 

당일 발표된 메이플스토리의 뮤직비디오를 제외하면 다른 작업물들은 공론화 이전까지 쉽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거기에 대놓고 상황과 동작이 어울리지 않는 장면들 외에도 커뮤니티에서 아니 이런 것까지? 억지 아니냐? 정도로 치부하고 대충 넘어갈만한 장면들 또한 존재하긴 했으나 관련 스태프의 '스리슬쩍 특정 사상을 계속해주겠다'는 과거 발언이 조명되며 본격적으로 해당 작업물들과 관련된 게임 이용자들의 의심을 키운 격이다.

 

이 교묘함이 발휘되는 곳이 그저 본인의 오리지널 작업물의 이스터에그라면 상대적으로 덜 문제였을 것이다. 다만 이번 케이스는 기업 사이의 외주 작업물들이었고, 비슷한 과거 사건들의 사례들로 미루어 기업이나 게임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만한 일이라는 부분은 자명한 일이었다.

 

굳이 매출을 꺼내지 않더라도 당장 이번 공론화로 넥슨을 비롯한 관련 게임사 직원들은 주말 심야부터 새벽 사이의 시간대에 느닷없는 대응에 나서야 했다. 이것의 책임소재는 어디에 있을까? 굳이 그걸 찾아내서 공론화한 사이버 불링 측인가, 아니면 기업 간의 공식적인 작업물에 의심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넣은 제작 측의 문제인가?

 

최초로 문제제기가 됐던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김창섭 디렉터는 26일 오후 7시에 생방송을 진행하며 재차 이용자들에게 사과를 전하면서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것을 드러냄에 있어 일련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문화, 그것들을 몰래 드러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 오늘 방송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하게 발언했다.

 

김창섭 디렉터의 방송에 따르면 엔젤릭버스터 뮤직비디오와 관련된 모든 영상 자료의 비공개 및 전수 조사가 진행되는 중이며 특히 '엔젤릭버스터와 관련된 마케팅을 모두 중단'한 상태이고 일부 남아있는 요소도 실무 커뮤니케이션 이슈로 실무자들이 월요일에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 그럼 이제 느닷없이 주말 새벽에 대응에 나서야 했던 인력 문제였던 것이 기업 외주 작업물에서 발견된 의심스러운 이슈가 실제 손해를 발생시킨 사례가 됐다.

 


김창섭 디렉터

 

이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문제'라고 강경한 발언을 했던 던전앤파이터 이원만 총괄 디렉터도 26일 추가 공지를 통해 "외주업체에서 제작된 작업물 검수를 진행하고 있고 조치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 검수까지 조치를 늦출 수 없으므로 현재까지 파악한 리소스에 대해 우선적인 조치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중간 상황을 전했다.

 

해당 공지를 통해 중간 단계에서 발견된 리소스를 살펴보면 선계 시네마틱, 마계 회합, 마계 업데이트, 여프리스트 애니메이션, 검귀&인챈트리스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굉장히 많은 영상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골라내고 있다. 동시에 이 디렉터는 이용자들로부터 제보되지 않은 부분까지도 확실히 조사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SNS 등 일각에서는 이런 이슈에 대응하는 기업들을 손가락질하며 단순히 여혐 남성들이 자행한 무고한 사이버불링 여론에 넘어가 넙죽 엎드린 한심한 기업 정도로 후려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번에도 그런 모습은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런 반응은 마치 이번 이슈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저1과 유저2가 지나가듯 구두약속을 한 정도의 무게감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사이버불링이라고 부를만한 수준까지 과한 행동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헌데 이른 바 사상검증, 컨텐츠 제작자의 성향을 파헤치는 것으로 치부되는 모든 행위가 사이버 불링의 범주가 맞다면 이번 상황 또한 기업 이익에 대한 사이버 테러로 규정해도 되는 부분인지 묻고 싶다.

 

 

 

두 번째 문제는 컨텐츠 참여자 또는 제작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사상의 설파를 위해 컨텐츠의 기존 가치나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감성은 거의 묵살하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제작자 본인이 온전한 자신의 작업물을 가지고 드러내면서 휘두르는 경우는 차라리 낫다. 그럼 받아들이건, 떠나건 이용자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헌데 컨텐츠에 참여한 이가 이런 사상을 설파하면 그림이 좀 이상해진다. 나중에 지휘봉을 잡은 사람이 작품보다 사상에 몰두해 건드려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와 영화로 범주를 넓혀 이런 식의 가치 훼손 사례로는 50년간의 역사를 쌓은 닥터후가 새로운 닥터를 내세우면서 이야기를 망가뜨렸고, 인어공주(2023)가 원작을 각색한다는 미명 하에 흥행에 실패했으며 스타워즈가 신작 영화 세 편으로 20년치 명성과 기존 팬덤의 기대치를 박살내버렸다.

 

다시 게임의 예로 돌아오자. 올해 게관위 논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모바일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가 선생님이라는 입장에서 게임 내 학생들과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교류하는 부분을 캐릭터성과 이야기의 핵심요소로 다룬다. 헌데 갑자기 이런 캐릭터들 사이에서 그런 혐오사상적 심볼이 발견되었다고 치자. 이용자는 어떤 기분이 들까? 이후의 플레이 경험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런 경우는 운영측에서 어떻게 대응하더라도 어느 한 쪽은 떨어져 나간다. 아뿔싸, 앞서 이야기했던 기업 간의 리스크 문제가 여기서도 발생한다.

 

한 쪽 입장만 사례로 들면 치사하니 입장을 바꿔보겠다. 여성 이용자를 주 고객으로 삼는 게임에서 갑자기 여혐 커뮤니티발 밈과 상징이 정성스럽게 캐릭터와 오브젝트에 도포되어 있고 그걸 이용자가 뒤늦게 발견했다면, 코알라와 손가락 인증이 튀어나오면 공론화하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컨텐츠에 갑자기 급진적 사상이 심어져있는 작업물이 확인됐을 때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조롱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중하고 존경하겠다. 본인은 그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지지하는 사상이나 여러 이권을 위해 교묘하게 왜곡해서 여론을 호도한다는 점이다. 아이고, 앞에서도 교묘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또 다시 교묘함이란 놈이 문제다. 심지어 이 문제에 있어선 메이저한 언론조차 사실과 다른 내용을 채용하거나 일방적으로 한 쪽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후에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게임이나 해당 이슈 연관 컨텐츠들과 그 이용자들이다.

 

예를 들어 지난 7월에 비슷한 사상적 이슈가 있던 크로스 플랫폼 게임의 경우, 분명 발단은 업데이트와 로드맵의 괴리 등 종합적인 불만에서 촉발되어 그간 불만스러웠던 부분들을 발굴해내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까지 화마가 들이닥친 격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어 '수영복 스킨을 그려주지 않아서 심술이 난 남자 이용자들이 일러스트레이터의 과거를 긁어내는 사이버 불링을 행했다' 같은 식의 유언비어를 흘리기도 했다.

 

이 케이스는 공중파 언론이나 메이저 인터넷 언론들에서도 다뤄졌는데, 마치 극단적 여혐 이용자들이 일으킨 사태로 포커스를 맞춰 보도되었고 뉴스 배경에는 해당 게임의 행사에 참여했던 코스프레 참가자의 사진을 삽입해 사진의 당사자가 코스프레를 한 상태로 사옥에 찾아가 난동을 부린 것처럼 오해할만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에 이슈가 된 손가락 심볼도 어느 시점부터 등호라는 의미를 겸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미 2015년 경 이를 남성 중요부위에 빗대며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모습을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원래의 의미를 교묘히 비틀어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교묘한 왜곡이 더욱 답답한 것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 이런 이슈가 발생했을 경우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 있다. 조용히 그만두기, 순응하기, 클레임을 걸기 정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니 인과를 생각해보면 문제가 발생하고 컨텐츠 제공자에게 대응을 촉구하며 주목하는 것이다.
 

동종 이슈를 접한 모두가 혐오종자이고 모두가 합심해서 과격하게 불링을 가했다는 폭론은 다시금 접어달라고 말하고 싶다.​

 

 

 

한편 최근 꾸준히 상승하던 PC의 기세가 더욱 강해지며 미디어 전반에 다양한 사상들이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어느 시점부터는 강요 수준으로 뛰어올라 기존의 소비자들을 계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앞서 지나가듯 언급한 영화 인어공주(2023)의 한국 흥행 부진에 대해 외국 커뮤니티 등에서는 한국이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있어 그렇게 된 것이라 호도하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달리 블랙팬서가 흥행한 전적이 있다. 참고로 인어공주의 한국 총관객 수는 최종 647,668명이었고 블랙팬서는 최종 5,399,327명이나 관람한 흥행영화였다.

 

인어공주가 단순히 배우의 인종 때문에 흥행에 실패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작품 전개나 연출이 다소 엉뚱하고 원작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자신들의 사상과 메시지를 강요하니 완성도가 떨어져 컨텐츠의 가치 자체가 훼손당했다고 느낀 결과라는 시각이 있다.  물론 과도한 PC의 바람에 지쳐 떨어진 영향도 분명 없지는 않을 것이고.

 

갑자기 영화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불행하게도 게임마저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몇 번째 같은 이슈가 발생했고 항상 같은 레퍼토리로 갈등이 이어졌다. 어느 한 쪽을 혐오하는 사상을 넣는 것 자체가 분명한 문제였으며 게임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이미 닥터후와 스타워즈에서도 같은 일을 겪었는데 게임에서까지? 아찔해진다.

 

게임을 메시지 발사대로 사용하지 말고 우선 게임성이나 완성도, 즐거움을 확립한 뒤에 유익한 메시지도 함께 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솔직히 이런 글을 쓰면서도 25일의 이슈와 관련해 사실 그렇게 극적으로 업계와 관계자들에게 무언가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당장 빠른 대응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일각에서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 실력이 좋으면 문제 없다, 업계가 좁아서 어차피 다시 마주친다, 아니면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로 가서 활동을 이어가면 된다 같은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일선에서 활약하며 커리어를 착실히 쌓은 특정 사상 지지자들도 있다.

 

굳이 따지자면 흔히 어르신들이 말하는 아이구, 어쩌다 이렇게 됐니의 게임 버전에 이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담은 한탄 정도에 가깝다.

 

이런 혐오와 갈등이 게임이라는 매체까지 넘어오는 지경이 되기 이전, 우리는 게임에 대한 다양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즐거움을 전해준 게임들 중에는 흔히 말하는 PC적인 요소가 강한 것들도 분명 섞여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게임이라는 매체와 그 안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두었지 메시지를 무작정 들이밀거나 이에 치중한 나머지 한 작품 내에서도 아귀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끝으로 다시금 정답을 알고 싶은 질문을 남긴다.

 

게임이라는 컨텐츠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때 완성도와 재미를 비롯한 가치가 우선인가? 확고한 사상과 메시지의 전달이 우선인가?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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