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산업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식공유 컨퍼런스로 알려진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26)의 일정도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18일 오전. NDC 26이 진행되는 장소 중 하나인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는 게임 디렉터 지망 및 신작 개발 포스트모템에 관심이 있는 개발자를 대상으로, 게임 디렉터의 관점으로 보는 블루 아카이브 포스트 모템 세션을 진행했다. 본 세션에서는 넥슨게임즈의 글로벌 인기 서브컬처 게임 블루 아카이브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설명하고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공유했다.

차민서 부본부장
이번 세션의 연사는 넥슨게임즈의 차민서 부본부장이다. 그는 넥슨게임즈 RX스튜디오에서 근무하고 있는 블루 아카이브 디렉터로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친숙한 얼굴이다. 차 부본부장은 블루 아카이브에 앞서 히트와 오버히트 제작에 참여한 바 있으며 현재는 프로젝트 RX의 PD를 맡고 있다.
그가 포스트 모템을 작성한 시기는 블루 아카이브의 최종편을 마감했던 시기였다. 블루 아카이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다. 이 즈음 차민서 부본부장은 포스트 모템을 작성하고 다음 작업을 할 땐 어떤 기조와 목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날 세션에 사용된 내용들은 블루 아카이브가 어떻게 제작된 게임인지 보여주며 개발 시작과 라이브 1년까지의 기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룬다.
■ 명확한 비전 빌드 수립
먼저, 차민서 부본부장이 밝힌 '잘한 것'은 '비전 빌드를 명확하게 만든 것'이다.
당시 첫째로 전투 프로토타이핑 중심의 구현, 둘째로 전투와 연출 영상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연말 마일스톤 M3에 비전 빌드를 완성하기로 했다. 오픈 기준으로 실행에서 전투까지의 흐름인 5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구현을 최소화하고 피처가 구현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마치 게임처럼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며 이것만으로도 작은 게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빌드는 현대의 블루 아카이브가 가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투의 경우 약간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인 전투 구성 등을 보면 현대의 블루 아카이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게임이 완성되는 시기에 절대 변하지 않을 비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으며 실제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비전 빌드를 명확히 만든 이후엔 재미있는 이야기, 멋진 아트를 확인할 수 있던 것은 물론 판매 가능한 게임으로서의 조건을 빠르게 완성해야 된다는 판단이 섰고,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했다.
■ 빠르게 일정을 달성해 선점효과까지
그 방법은 기본적으로 빠르게 위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나눠 아트 디렉터, 시나리오 리드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대신 게임 완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의 최저선을 협의했다. 여기서 가이드라인의 최저선은 플레이 시간으로 얼만큼, 계정 레벨은 얼마, 캐릭터 숫자는 몇 명, 배경 숫자는 몇 개 같은 사항을 의미한다.
시작 기준으로 출시까지 약 34개월 정도가 걸렸다. 신작 게임을 만듦에 있어 일정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살짝 밀리긴 했지만 일정이 잘 마무리된 편이라고. 만약 런칭이 늦었다면 우마무스메 등의 신작들이 치고 나가 타이밍을 놓쳤을 것이다. 의도한 부분은 아니었지만 출시 시점을 지키고 빠르게 출시하는 것으로 선점 효과라는 중요한 부분을 취할 수 있었다.
게임을 만드는 시점에 이 게임이 완성되고 게임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착하는 시기를 예측하게 되는데,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예측을 잘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예상된 일정대로 게임이 나오는 것이다. 차 부본부장은 그것을 잘했기 때문에 블루 아카이브가 어느 정도 이상의 선점 효과를 봤다고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일정을 지킨 방법은 단순하고 확실한 단기적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목표를 만든다. FGT를 할 때는 2시간 플레이 목표, CBT는 20시간 플레이를 목표로 하자, 오픈 스펙은 한 달 플레이에 더해 추가로 3개월 라이브 스케쥴을 확보하자, 하루 플레이 시간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그렇게 할 경우 얼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느냐 등을 고려하며 만들어질 수 있는 컨텐츠에 집중했다. 이 세 가지만이 아니라 몇 가지가 더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이 세 가지였다.
■ 단순한 개발 원칙과 장기 운영
개발 기간 동안 있으면 안 되는 일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게임 개발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멋진 것을 보여주고 싶지만 이것에 대한 불안도 심하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 혹은 이렇게 만들면 망하나? 불안한데?, 이렇게 만들면 더 좋아할거야! 같은 걱정은 무한한 공포를 낳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언급한 것은 테스트, 플레이, 유저 및 내부 피드백이다.
그는 단순한 원칙을 반복해 모두가 정한 것은 고쳐 다음 버전에 무조건 반영했다.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개발을 하고 있는 본인들이 개발한 내용에 대해 스스로 플레이하며 테스트하고 내용에 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고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괴로운 일이다. 나만이 할 수 있다,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고쳐왔다.
장기 운영을 위해선 전세계 런칭이 필수적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당시 개발인력은 한 번에 모든 권역을 준비하기엔 적은 70~80명이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곳 중 중요한 지역부터 먼저 진행해 일본, 글로벌, 중국 순으로 런칭이 이루어졌다. 만약 동시에 런칭하려고 했다면 현재의 퍼블리셔인 요스타 일본과 함께할 수 없었을 것이며, 중국을 기다려서 동시에 런칭했다면 출시 자체가 어렵거나 선점효과를 잃을 수도 있었다.
장기 서비스를 위한 '초안'을 만든 과정도 알 수 있었다.
부본부장은 블루 아카이브 전 몸담았던 오버히트나 일본의 드래곤볼 돗칸 배틀 같은 예시를 들며 당시 많았던 캐릭터 수집형 게임이 판매 수단으로 강함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이미지만 봤을 때 누가 더 강한지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원안 구성 단계에서 이런 부분은 피했다.
수집형 게임의 장기 서비스가 가진 과제는 늘 1개의 파티만을 주로 쓴다는 점이다. 그러나 2파티 이상 사용되는 컨텐츠의 재미 등을 생각해 이런 컨텐츠가 필요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상성 중심의 시스템이다. 조금 복잡하더라도 그럴듯 하고 누가 봐도 동일한 규칙이라면 유저들은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강력한 속성 기반의 시스템은 당시 일본의 장기 서비스 게임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던 시스템이기도 하다. 페이트/그랜드 오더나 퍼즐&드래곤 같은 게임의 경우 그 속성 상성의 효과가 굉장히 크기도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느낌이 있다.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 장기 서비스 게임의 공통적인 시스템이었던 경쟁 PVE도 살폈다. 그랑블루 판타지나 프린세스 커넥트 등은 PVE 기반의 경쟁을 위주로 하고 있었으며 PVP가 있더라도 약간의 경쟁이었다. 이런 탐구 과정을 거치면서 상성 시스템과 총력전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그럴듯한' 시스템의 탄생
캐릭터 상성 시스템은 복잡한 대신 배우기는 쉽고 효과가 그럴듯해야 한다. 경장갑, 중장갑, 특수장갑의 적을 만났을 때 확연이 달라야했고, 이를 위해 생김새만 보고도 바로 유추할 수 있게 하거나 HP바와 캐릭터 컬러를 맞춰 배치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자연히 학습될 장치를 마련했다. 캐릭터 지형 효과도 마찬가지다. 효과가 복잡하지마 배우기는 쉬워야 하며 효과는 그럴듯해야 한다.
블루 아카이브의 전략 맵이나 총력전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전략 맵의 경우는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실제로 만들어본 결과 아이디어의 착안점이나 바라는 방향의 차이가 있어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과는 다른 지금의 결과물이 완성됐다. 총력전 또한 아이디어 자체는 프린세스 커넥트에서 얻었지만 그 결과물은 약간 달라졌다.
차민서 부본부장은 이 모든 것이 장기 리텐션에 효과가 있었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처음에는 자연히 작은 고민들을 하게 되고, 작은 고민 끝에 성공 경험을 주면서 플레이하다보면 자연스레 젖어갈 수 있는 게임의 구성을 만들기로 했고, 실제 커뮤니티 등에서 제작된 표를 보며 처음 의도한대로 잘 동작했다고.
■ 부족한 부분은 있다
잘한 부분이 끝나면 어떻게 되나, 부족한 부분이 시작된다. 그는 이어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먼저 빌드 안정성의 문제다. 8월 27일 일본 메인터넌스의 사례는 추후 원인을 확인해본 결과 내부 QA 기준을 단단히 세우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의견을 밝혔다. 당시 제작한 게임드은 대개 넥슨 QA 이후 런칭했기에 이 환경에 익숙했고, 외부 퍼블리셔와 일한 것도 이 시기가 처음이라 미흡했던 것이 원인으로 생각된다는 것.
예상 이상의 흥행도 원인이었다고 한다. 블루 아카이브는 최초 목표했던 DAU의 500% 이상을 달성했다. 얼핏 듣기엔 참 좋고 꿈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차 부본부장은 '당해보면' 다르다는 이야기도 했다. "500%? 저희 괜찮을까요?" 같은 반응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예상 이상의 사고가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 AWS 도쿄 리전의 마비 사건이 있다.
여러 원인들 중 가장 큰 것으로 꼽힌 사항은 계약부터 런칭 시기까지 유행했던 코로나19를 짚었다. 글이나 메일, 그림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는 있지만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데, 당시에는 퍼블리셔와의 대면 회의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부분이 컸다고.
■ 일상 컨텐츠 부족과 '없데이트'
블루 아카이브는 어찌보면 근본적으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소위 말하는 미연시를 다루는 것과 같았다. 능력과 애정 중 애정을 중시하는 PD와 중요한 내러티브는 2D 캐릭터만으로 진행하는 구조 같은 환경이다.
그렇기에 캐릭터와의 교감 컨텐츠가 필요했다. 그런 것을 만들기 위해선 대부분 아트나 시나리오 리소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모모톡과 카페, 학원 등 현대 블루 아카이브에 적용된 컨텐츠들이 그 결과물이다. 당시의 마일스톤 일부에서는 일정 막바지까지 카페 폴리싱 등의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UI와 아트 연출, 시나리오 비용 등 이런 리소스들은 블루 아카이브 개발에 있어서 가장 비싼 자원이라는 것도 문제였다고 할 수도 있다.
단순히 돈의 가치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개발자들 중 미소녀 게임을 개발했던 개발자도 거의 없었고, 그 가운데서 일상 컨텐츠를 제작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해당 인력은 굳이 게임 쪽으로 와서 일하지 않아도 픽시브, 판티아, 카카오 웹소설 등 충분히 자신의 플랫폼에서 일할 수 있는 이들이기에 비싼 자원이 될 수 밖에 없다.
인력이 확보됐다 하더라도 매번 업데이트 일정까지 고려하면 가장 비싼 업데이트이기도 하다. 구현 기준으로 한 축만 추가 구현해도 캐릭터 내러티브 구성/아트 애셋 제작량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업데이트 선행 준비의 어려움도 이야기했다. 차 부본부장은 미리 만들 수 있는 업데이트 양이 과거보다 늘었다고 생각했으며, 최소 1~2개월치를 확보한다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가능한 3~6개월 분량은 필요했다고 한다. 결국엔 준비한 것이 모자랐다고 한다.
차민서 부본부장은 프로젝트 이동마다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정리해왔다고 밝혔다. 단순한 이유다. 잘한 것은 더 잘하고 못한 것은 덜 못하게 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좀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단순한 원칙을 회전시키며 좀 더 좋은 것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또한 자신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표와 가치를 위해서 일을 하게끔 하는 데에 좀 더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한편, 그는 현재 PD로서 개발 중인 프로젝트 RX에 대한 기대를 부탁하고, 현재의 블루 아카이브는 자신보다 훌륭하고 멋진 개발자들이 개발하고 있으니 그들을 응원해달라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